조슈아 벨과 워싱턴포스트의 장난
네이버 기사: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25&article_id=0000653284&section_id=103&section_id2=242&menu_id=103

워싱턴포스트 기사(동영상 포함):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7/04/04/AR2007040401721.html

괜히 마음에 들어서 (동영상도)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번역해봤다.
흑 사실은 어려운 메일을 쓸 게 있는데 도무지 손에 안 잡혀서 도피 중. ㅠ_ㅠ
퇴고 없는 막장번역인데도 시간이 꽤 걸리네. ㄱ-
하지만 재미있는 기사였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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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전에 만난 진주
최고의 음악가는 워싱턴D.C. 러시아워의 안개를 갈라낼 수 있을까? 함께 보자.
진 바인가르텐, 워싱턴포스트 2007년 4월 8일자

그는 랑팡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나와 벽을 등지고 섰다. 쓰레기통 옆이었다. 아무리 뜯어봐도 특색없는 형색이다. 청바지에 긴팔 티셔츠를 입고 워싱턴 내쇼널즈 야구모자를 쓴 백인 청년. 그는 작은 케이스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그리고 열린 케이스에 달러 몇 장과 잔돈푼을 휙 던져 넣었다. 원래 미끼돈이란 게 있는 법이다. 케이스가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도록 돌려놓은 뒤, 그는 연주를 시작했다.
1월 12일 금요일 아침 7시 51분, 출근시간대 러시아워였다. 이후 43분간 바이올리니스트는 6곡의 고전 레퍼토리를 연주했고, 그 앞을 1097명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대부분은 일하러 가는 중이었고, 그 말인즉 대부분이 정부기관에서 일한다는 뜻일 것이다. 랑팡 플라자역은 워싱턴 연방기관들의 핵심이나 마찬가지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간 관리자급 관료들로서 이를테면 정책 분석가, 프로젝트 매니저, 예산 감독관, 전문가, 진행가, 컨설턴트 등의 알듯 모를듯 무슨 말로 바꿔도 좋아보이는 직함들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선택을 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거리연주자가 드물지 않은 도시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보았을 선택의 문제다. 멈춰서서 들어볼 것인가? 약간의 죄책감과 당황을 간직한 채 바삐 지나쳐갈 것인가? 호기심을 느끼는 한편, 당신의 시간과 돈을 불쑥 요구받았다는 짜증섞인 기분을 느끼면서? 당신은 예의상 동전을 집어넣어주는 타입인가? 연주자의 솜씨가 형편없으면 결정이 달라지는가? 연주자가 무진장 뛰어나다면?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감상할 시간을 낼 수 있는가? 그러면 안되는가? 그 순간, 당신의 마음속에 벌어지는 계산은 어떤 것인가?

1월의 그 금요일,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공공연히 위의 개인적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듣는 시험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몰랐지만,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거리로 나가는 문 사이에 텅빈 벽을 등지고 선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음악가 중 한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악기로,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음악들을 연주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그곳에서 연주하게 된 것은 워싱턴포스트가 사람들의 맥락, 인지, 우선순위에 대한, 또한 군중의 취향에 대한 실험을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상황, 불편한 시간대. 과연 아름다움이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연주자는 대중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대중음악을 연주하면 익숙한 멜로디 때문에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겠지만, 그것을 시험하고 싶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연주한 것은 아름다움 하나로 수세기를 살아온 걸작들, 장엄한 대성당이나 연주회장의 분위기에 알맞을 그런 음악이었다.

음향 조건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그 공간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와 바깥을 이어주는 곳으로서 실용적 설계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어쩐 일인지 소리를 잘 잡아서 반향시켰으며 제법 울리게 했다. 바이올린은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가깝다고 하는 악기다. 이제 이 장인의 손에서, 악기는 울고 웃으며 노래했다. 열정적이고, 서글프고, 매달리고, 구애하고, 떠들고, 꾸짖고, 즐기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행진하며, 풍성하게 노래했다.

자, 반응이 어땠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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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그 전에 몇몇 전문가들의 예측을 들어보도록 하자.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레너드 슬래트킨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 신분을 숨기고 러시아워 중에 1000명의 지나치는 관중들 앞에서 연주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음, 생각해봅시다." 슬래트킨은 이렇게 답했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고 그저 길거리 연주자로 보인단 말이죠... 그래도 그렇게 훌륭한 연주라면 눈치채이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물론 유럽에서라면 더 알아보는 사람이 많겠죠. 그래도 뭐, 1000명이라면, 최소한 35명이나 40명 정도는 연주가 얼마나 탁월한지 깨달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75명에서 100명 정도는 길을 멈추고 잠시라도 들어볼 것 같군요."

그러니까, 관중이 몰릴 것이다?
"그럼요."

돈은 얼마나 벌까요?
"한 150달러 정도요?"

고맙습니다, 마에스트로. 그런데 말이지요, 이게 그냥 생각해보는 게 아니라 진짜 실험해본 거랍니다.
"내 예측이 맞았나요?"

잠시 후에 알려드리지요.
"그럼, 그 연주자는 누구였습니까?"

조슈아 벨이었습니다.
"설마!!!"

신동으로 불렸던 조슈아 벨은 39살인 지금 세계적으로 각광받은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다. 지하철역에 나타나기 바로 3일 전, 그는 보스턴의 시립 심포니홀에서 연주회를 가져 자리를 그득 채웠다. 꽤 좋은 자리만 해도 100달러가 넘는 연주회였다. 2주 뒤에는 노스베데스다 스트라스모어의 뮤직센터에서 공연하게 된다. 그 자리는 관중들이 모두 스탠딩으로 관람하는 곳이었는데, 관객들은 그의 연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노래가 끝나기 전에는 기침조차 뱉지 않으려 애쓴, 훌륭한 공연이 되었다. 그러나 1월의 그 금요일은 사정이 달랐다. 조슈아 벨은 바쁜 출근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한푼이라도 벌려고 애쓰는 길거리 연주자일 뿐이었다.

벨이 처음 이 제안을 받은 것은 크리스마스 직전이었다. 캐피톨힐의 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며 들은 얘기였다. 뉴요커인 벨이 그때 워싱턴을 찾은 것은 국회도서관에서 공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 도서관의 금고를 방문하여 귀중한 보물 하나를 살펴볼 계획도 있었다. 뛰어난 오스트리아 출생 연주자이자 작곡자,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사용했던 18세기 바이올린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큐레이터가 벨을 초청하여 연주해보도록 한 것인데, 참고로 바이올린은 아직도 소리가 멋졌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벨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크라이슬러를 연주하는 투어를 가져보면 어떨까..."
그가 웃었다.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으로 말이지요."

영감과 장난이 반반 섞인듯한, 재치있고 반짝이는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그것이 벨다운 것이었다. 벨은 경력이 쌓여 점점 점잖아짐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할 때 언제나 쇼맨십을 보여주는 연주자다. 그는 최고의 오케스트라들과 세계 각지에서 협연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서미 스트리트'에 등장하는가 하면 심야 토크쇼엗 등장하고, 영화를 위해 연주하기도 했다. 1998년 영화 '레드 바이올린' 사운드트랙도 그의 작품이다. (나체의 그레타 스카치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역으로 대역 등장을 하기도 했다.) 사운드트랙 작곡자 존 코리글리아노는 오스카에서 음악상을 받으면서 벨에게 영광을 돌렸다. 벨이 "신과 같은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감사했다.

그런 벨에게 평범한 옷을 입고 길거리에서 러시아워에 연주해볼 것을 청하자, 벨이 말했다.
"음, 일종의 연기인 셈인가요?"
말하자면 그렇다. 대역 연기라고도 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부탁인 것일까?
벨은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재밌을 것 같은데요."

벨은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키 크고 잘 생긴 그는 실제로 보면 도니 오스몬드 타입의 귀염성이 있는 편이지만, 무대에 서면 귀여움은 사라지고 압도적인 매력이 드러난다. 그는 일반적인 흰 셔츠와 연미복을 입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검은 바지에 주름이 없는 검은 드레스 셔츠를 입고 셔츠 자락을 펄럭이며 마치 조로마냥 기립박수로 맞는 관객들 앞에 나선다. 이 비틀즈 스타일의 옷차림은 전략적으로 의도된 것이기도 하다. 벨은 온 몸으로 기교를 표출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운동선수처럼 열정적인 몸짓으로, 그는 거의 악기와 춤이라도 추듯 한다. 머리칼을 흩날리면서 말이다.

그는 이성애 독신 남성이다. 이 점에 매력을 느끼는 팬들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보스턴에서 막스 브루흐의 음울한 G단조 바이올린 협주곡을 공연할 때, 관중석은 온통 은발의 물결이었고 몇몇 젊은 여성들의 모습은 그 속에 묻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몇 안 되는 그 젊고 아름다운 여성 관객들은 하나같이 공연 뒤 무대 뒷문에 결집하여 그의 사인을 받으려 난리들인 것이다. 벨의 공연은 언제나 그런 식이다.

벨은 사춘기 이후로 내내 그런 열광적인 애정공세를 받아왔다. 한 잡지는 그의 연주가 "인간이 왜 살아야 할 가치가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었다고까지 평했다. 그리고 벨은 이 온갖 찬사들을 여유있게 받아치는 법을,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그저 "흥"하고 넘겨버리는 법을 배워왔다.

이 몰래카메라 실험을 함에 있어 벨이 내건 조건은 단 한 가지였다. 우리는 벨에게 이 실험을 설명하기를, 평범한 사람들이 이상한 상황에서도 천재를 알아보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천재라고 불리는 건 편하지 않습니다." 그는 "천재"란 말이 지나치게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자신이 연주하는 몇몇 작곡가들에게나 합당한 것이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술은 대개 해석에 국한된 것이므로, 그 이상으로 불리면 바람직하지도, 옳지도 않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요청이었고, 이런 조건 하에서는 당연히 수락되어야 할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도 다시는 천재라는 단어는 쓰지 않겠다.

하지만 문제의 그 용어가 가리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것 정도야 규칙 위반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음악계에서, 그런 사람이란 탁월함을 타고난 사람을 말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도드라지게, 자연스럽게, 뱃속에서부터 배운 듯 재능을 드러내는, 그것도 극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사람 말이다.

벨의 어린시절 이야기 중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기 시작한 것이 4살 때, 블루밍턴에서의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벨의 부모는 두분 모두 심리학자였는데, 아들이 서랍에다 고무줄을 엮어놓고는 자신이 들었던 음을 재현하기 위해, 즉 음조를 맞추기 위해 서랍을 조금 열었다 닫았다 조정하는 것을 보고는 정식으로 교육을 시키기로 결정했다.

***

호텔에서 지하철역까지는 세 블록 거리에 불과했지만, 벨은 택시를 탔다. 몸이 불편해서도, 게을러서도 아니었다. 바이올린을 위한 선택이었다.

벨이 사용하는 악기는 하나로 정해져 있어서, 이번 공연에도 다른 것을 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깁슨 엑스 후버만이라 불리는 그 악기는 171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 유명한 이탈리아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경력 후반의 "황금기"에 손수 만든 것이다. 최상의 전나무, 단풍나무, 버드나무를 가지고서, 완벽에 달한 손재주로 조각해낸 물건이다.

"음향학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아직도 부족한 데가 많지만, 그는 그저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요." 벨의 말이다.

벨은 스트라디바리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그저 "그"라고만 한다. 벨이 자신의 악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면 늘 사랑스러운듯 악기의 목을 잡고 무릎에 가만히 얹어놓는다. 벨은 악기를 한 바퀴 돌려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모든 부분의 두께를 완벽하게 만들었어요. 한 부분을 고작 일 밀리미터라도 더 깎아냈다면, 전체 소리의 균형이 완전히 깨졌을 겁니다." 아직도 1710년대에 만들어진 스트라디바리보다 멋진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은 없다.

벨의 바이올린 앞부분은 거의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깊고 풍부한 질감에 윤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뒷면은 사뭇 엉망이다. 진갈색 도료가 벗겨져서 색이 연해진 부분도 있고, 한쪽에는 거의 생나무결이 드러난 곳도 있다.

벨은 말했다. "손질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이게 원래의 도료입니다. 바이올린 소리는 일부분 도료의 영향을 받는다고도 해요. 제작자들마다 도료를 만드는 비장의 비법이 있죠." 스트라디바리는 꿀, 달걀 흰자, 사하라 사막 이남의 나무들에서 얻은 아라비아 고무를 천재적으로 섞어서 도료를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주인공 악기처럼, 벨의 악기도 신비와 악의로 가득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 악기의 전소유주였던 폴란드의 거장 브로니슬라프 후버만은 두 차례 악기를 도둑맞은 바 있다. 첫 번째는 1919년의 일이었는데 후버만이 묵었던 빈의 호텔에서 없어졌으나, 곧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는 그로부터 약 20년 뒤의 일로, 카네기홀의 대기실에서 없어졌다. 후버만은 그후 악기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도둑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뉴욕의 한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그가 1985년에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서 아내에게 고백을 한 뒤, 악기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다.

벨은 이 악기를 몇 년 전에 구입했다. 이전까지 갖고 있던 다른 스트라디바리를 팔고도 한참 돈을 빌려야 했다. 가격은 약 350만 달러였다는 소문이 있다.

이제까지 악기에 대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것은, 한기가 오싹한 1월의 아침에 왜 조슈아 벨이 고작 3블록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지하철 오렌지선까지 가서는 한 정거장을 지하철을 타고 가서 랑팡 역에서 내렸다.

***

지하철역이야 원래 그렇겠지만, 그래도 랑팡 플라자역은 다른 역들에 비길 바 없이 극히 평범한 편이다. 이 역은 도착하기 전부터 존재감이 없다. 지하철 역무원들이 이 역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레-판", "레이폰트", "엘판트"...

에스컬레이터들을 타고 올라오면 그 끝에는 구두닦이 가게가 하나, 그리고 신문이며 복권이며 선정적인 제목들로 도배된 잡지들을 파는 북적이는 노점이 하나 있다. 포르노 잡지의 인기가 대단하긴 하나 그래도 가장 바쁜 것은 복권 판매대다. 고객들은 데일리6로또나 파워볼 복권, 아니면 "대박"을 장담하는 난수 번호를 알려준다며 미끼를 던지는 팜플렛들을 사느라 줄을 길게 선다.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 모른다. 옆에는 로또 티켓을 집어넣어서 당첨 여부를 확인하는 기계가 서 있다. 그 아래에는 꾸깃꾸깃 접혀 버려진 종이조각들이 산더미다.

그 날, 1월 12일 금요일, 한방을 노리고 복권 구매 줄에 늘어선 사람들은 나름대로 행운을 맛본 것이나 다름 없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의 콘서트를 무료로, 목전에서 지켜볼 공짜 티켓을 얻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바라볼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법이다.

벨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파르티타 No. 2 D단조 중의 "샤콘느"로 공연을 시작하기로 했다. 벨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 곡은 현존하는 모든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일뿐더러, 역사상 인간이 창조해낸 그 어떤 것보다도 위대한 창조물에 속합니다. 강한 활력이 넘치면서도 감정적으로 풍성하고, 구조적으로 완벽합니다. 게다가 바이올린 솔로곡으로 씌어졌지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의 곡이 아닌 겁니다."

벨이 언급하지 않은 또 한 가지 사실은, 바흐의 "샤콘느"는 연주하기 가장 까다로운 곡으로도 유명하다는 점이다. 시도하는 자는 많되 완벽하게 장악하는 자는 많지 않다. 게다가 지칠 정도로 길다. 14분이다. 하나의 간결한 음 진행이 수십 가지 형태로 변주되어 등장하므로, 대단히 복잡한 소리의 구조를 이뤄낸다. 1720년 무렵, 즉 유럽 계몽기의 여명에 작곡된 이 작품은 인간의 가능성의 한계를 찬양하는 곡이라고도 일컬어진다.

"샤콘느"에 대한 벨의 찬양이 너무 지나치다고 여겨진다면, 19세기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클라라 슈만에게 보낸 편지에서 했다는 다음 발언을 읽어보라. "한 인간이, 하나의 보표 위에, 하나의 작은 악기를 통해,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한 감정들을 통해, 이 세상 전체를 담아낸 것입니다. 제가 그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다면, 아니 생각해낼 수만이라도 있었다면, 저는 아마 극도의 흥분과 땅이 흔들리는듯한 감동에 스스로 취하여 정신이 나가고야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 벨이 처음으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작품이었다.

벨이 그저그런 공연을 하지는 않겠다고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벨은 묘기와도 같이, 엄청난 열정으로 연주를 하였다. 온몸이 음악에 녹아들었으며 고음을 연주할 때는 발끝으로 몸을 세우고 굽히기도 했다. 소리는 교향악단의 것인 양 풍성했다. 행인들이 가득 한 조그만 공간 구석구석은 빈틈없이 채웠다.

3분이 지나도록 아무 일이 없었다. 63명의 행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쳐갔다. 그러다 마침내, 흐름을 깨는 일이 벌어졌다. 중년의 한 남성이 잠시 발걸음을 늦추고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걸 깨달은 표정이었다. 물론 남자는 곧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사건은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30초쯤 뒤, 벨은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한 여성이 동전을 던져놓고는 휙 스쳐갔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벽에 기대어 서서 차분히 듣는 광경이 연출된 것은, 연주 시작 후 6분이 지나서였다.

그러나 상황이 별반 나아지지는 않았다. 조슈아 벨은 약 45분 가량 연주를 했다. 그 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단 1분이라도 연주를 들어준 사람은 고작 7명이었다. 27명이 돈을 주었지만 대부분은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였다. 벨은 32달러 정도를 벌었다. 결국 나머지 1070명은 의식도 못한 채로 벨의 1미터 앞을 지나쳐갔다는 얘기다. 고개를 돌려 돌아본 사람조차 없었다.

자, 슬래트킨 씨, 답하자면, 관중은 없었습니다. 단 일초도 말입니다.

모든 광경이 몰래카메라에 담겼다. 촬영된 내용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치 않다. 한 번을 보든, 15번씩 반복해보든 말이다. 속도를 빠르게 해서 보면 마치 덜컥덜컥 끊기곤 하는 제1차 세계대전 시의 무성 뉴스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사람들이 우스꽝스럽게 꼼지락거리며 움찔움찔 흘러간다. 손에는 커피를 들고, 귀에는 휴대폰을 대고, 배에는 신분증 목걸이를 늘어뜨리고, 무관심과 관성과 구중중하고 칙칙한 현대적 분주함으로 무장한 죽음의 춤을 추는 듯 하다.

눈이 돌아갈 듯한 이 물결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리니스트의 움직임은 변함없이 유려하고 우아하다. 그는 관중들로부터 한참 먼 다른 세상에 있는 듯 하다.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고, 다른 세상에 있는 듯 하다. 정말이지 그는 그 자리에 없는 것만 같다. 그는 유령이다.

그러나 잘 보아야 알 수 있다. 그 장소에 진실로 존재한 것은 그 한 사람 뿐이었다. 유령은 행인들이었다.

***

뛰어난 음악가가 멋진 음악을 연주했는데도 아무도 듣지 않았다면... 그가 정말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오래된 인식론적 질문이다. 숲속의 나무가 어쩌고 하는 선문답보다 오래된 질문이다. 플라톤이 이 문제를 다루었고, 이후 2천년에 걸쳐 철학자들이 고민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측량가능한 사실인가(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그저 의견일 뿐인가(데이비드 흄), 아니면 양쪽 모두에 속하며 관찰자의 당시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무언가인가(임마누엘 칸트)?

우리는 칸트의 입장을 취해야 하겠다. 명백히 그가 옳기도 하거니와, 그래야만 우리가 조슈아 벨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벨은 이제 호텔 레스토랑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방금 전에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상황이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스스로 이해하고자 노력 중이다.

벨이 말했다. "처음에는 그냥 음악에 집중을 했어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죠."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는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벽한 몰입을 요하는 일로 보인다. 하지만 벨에 따르면 자신의 경우에는 연주라는 게 거의 제2의 본능처럼 익숙해졌다고 한다. 연습과 근육기억으로 다져져 자동적인 면이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관중과 상호작용하면서 공을 저글링하는 묘기꾼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연주를 할 때 가장 많이 염두에 두는 점은 어떻게 관중의 감정을 사로잡을까 하는 점이다. "바이올릴 곡을 연주할 때면 저는 이야기꾼이 되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예요."

그런데 "샤콘느"는 처음에 경이로움이라는 느낌을 쌓아올려가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연주에만 바빴던 것이다. 그러나 좀 있다 그는 곁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흠..."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듯 하다.
"저를 무시하는 게 말이죠."
벨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자신을 향한 웃음이다.

"연주회장에선 말이죠, 누군가 재채기를 하거나 누군가의 휴대폰이 울리면 전 엄청나게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대치가 급격히 낮아졌어요. 그저 슬쩍 넘겨다봐주는 것만 해도 확실한 반응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되더군요. 잔돈 대신 1달러를 넣어주는 사람에게는 거의 감격하게 되더군요." 분당 1000달러의 연주 몸값을 자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벨은 어떤 반응을 기대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그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조금 신경이 날카로웠다고 한다.

"무대 공포 같은 심정은 아니었지만, 하여튼 초조했어요. 약간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벨은 유럽의 왕족들 앞에서도 연주해본 사람이다. 그런데 워싱턴의 지하철역에서 무슨 불안을 느낀단 말인가?

"티켓을 사서 들어온 관중들 앞에서 연주할 때는 이미 정당성을 인정받은 겁니다. 내가 저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이미 인정받은 셈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는 그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내 존재를 기분나빠하면 어쩌지..."

말하자면 그는 액자 없이 주어진 그림이었던 것이다. 1월 12일에 벌어졌던 일,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벌어지지 않았던 일은 그 점과 밀접한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

마크 라이트하우저는 어떤 왕이나 교황보다, 심지어 메디치 가문의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위대한 작품들을 손에 쥐어본 사람일 것이다. 국립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는 액자를 담당한다. 라이트하우저는 지하철역에서의 사건에 대해 나름대로 할 말이 있다.

"제가 추상화의 걸작들 중 하나를, 가령 엘스워스 켈리의 작품 같은 걸 골라서 액자에서 떼어내 버린 뒤 그걸 들고 국립 미술관으로 오르는 52계단을 거꾸로 내려간다고 상상해봅시다. 거대한 기둥들을 지나친 뒤, 그걸 한 식당에 들고 가는 겁니다. 족히 500만 달러는 나가는 작품을요. 그 식당이 원화를 걸어두고 판매하는 곳이라 합시다. 가령 코코란 대학 학생들의 작품 같은 것 말입니다. 켈리의 작품을 거기 걸고 150달러라는 가격표를 붙여둡니다. 절대, 아무도 그걸 알아채지 못할 겁니다. 설령 큐레이터라 해도 그걸 보곤 이렇게 말할 걸요. '저것 좀 봐, 꼭 엘스워스 켈리 작품 같네. 소금 좀 줘.'"

라이트하우저 말의 핵심은, 지하철의 행인들을 교양 없는 속물들이라 섣부르게 평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맥락이
중요한 법이니까.

칸트도 똑같은 말을 했다. 아름다움을 중요한 것으로 여겼던 칸트는 <심미적 판단력 비판>에서 주장하기를,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과 연관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미국 제일의 칸트 전문가 중 한 명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폴 가이어 교수의 지적에 따르면, 이 18세기 독일 철학자는 덧붙이기를 아름다움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으려면 감상 조건이 최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가이어의 말이다. "일을 하러 출근하는 상황이란 최적이라 할 수 없죠. 상사한테 올릴 보고서 생각이 가득하거나 신발이 잘 맞지 않는 상황 같은 건 말이죠."

만약 조슈아 벨이 천 명의 무심한 행인들 앞에서 연주하던 그 지하철역에 칸트가 있었다면?
"칸트라 해도 그들을 두고는 아무런 판단도 내릴 수 없었을 겁니다."
옳은 말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 비디오를 맨 처음으로 감아 다시 보자. 벨의 활이 현에 닿는 첫 순간부터 말이다.

면바지에 가죽 재킷, 서류가방을 든 30대 초반의 백인 남성이 보인다. 존 데이비드 모르텐센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레스톤에서 회사까지 오는 일상적인 출근길을 막 마무리하는 참이다. 모르텐센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않고 서 있으면 1분 15초가 걸린다. 그러므로 그날 벨을 스쳐간 다른 사람들처럼, 모르텐센도 연주자의 얼굴을 보기 전부터도 한참 음악을 들을 시간이 있었다. 역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모르텐센도 연주가 썩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에스컬레이터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모르텐센은 벨이 무슨 피해야 할 존재라도 되는 양 가급적 빨리 스쳐지나가는 편을 선택하지 않았다. 모르텐센은 연주 시작 후 6분 경에 등장한 바로 그 사람이다. 최초로 걸음을 멈춰 음악을 들은 사람 말이다.

모르텐센이 심심했던 건 아니다. 에너지부에서 해외 프로그램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는 모르텐센은 그날도 월례 예산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모르텐센의 말이다. "지난달의 지출을 점검하고, 다음달의 지출을 예상하는 일이죠. 돈이 X달러 있다면 그걸 어디다 배분하나, 뭐 그런 일이죠."

비디오를 보면 모르텐센이 에스컬레이터를 나와 주변을 둘러본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찾아내고, 멈춰섰다가, 계속 걸어가버리지만, 곧 다시 끌려든다. 그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아직 출근시각에서 3분이 남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서 음악을 듣는다.

모르텐센은 고전 음악에는 전혀 조예가 없다. 취향이라 해 봐야 고전적인 록 음악 정도일까. 하지만 그때 들은 음악에는 그의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실 그가 등장한 시점은 벨이 "샤콘느"의 두 번째 악절로 넘어가는 때였다. ("노래가 어두운 단조에서 벗어나 장조로 넘어가는 지점이죠. 종교적이고도 뭔가 고양되는 느낌이 있는 대목이에요." 벨의 말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활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음악은 한층 활기차고, 장난스럽고, 연극적이고, 거창해진다.

모르텐센은 장조도, 단조도 모른다. "그게 뭐든 간에, 마음이 평화로워졌었거든요."

그래서, 인생 최초로, 모르텐센은 길거리 연주자의 음악을 듣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섰다. 모르텐센은 94명의 행인이 무심히 그 앞을 지나가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3분의 여유를 그곳에서 보냈다. 에너지부 예산 편성을 위해 정말 자리를 떠야 했을 떄, 그는 또 한 가지 인생 최초 행동을 했다. 인생 최초로,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존 데이비드 모르텐센은 길거리 연주자에게 돈을 주었던 것이다.

***

벨은 회상하기도 난감한 순간이 여섯 차례 있었다고 말한다. 벨은 "겸연쩍은 순간들"이라 말한다. 그건 각 곡이 끝나는 직후를 말한다. 그때는 아무 것도 없다. 노래는 끝났다. 행인들은 연주자가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니 노래가 끝났다는 걸 알지도 못한다. 박수도, 환호도 없다. 그래서 벨은 간단한 화음을, 다소 신경질적으로 긋는다. 당황한 음악가가 그런다는 건 "음, 좋습니다, 다음 곡으로 넘어가죠..."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벨은 다음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샤콘느" 다음은 프란츠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이다. 1825년 초연되었을 때 몇몇 평론가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작품이다. 슈베르트는 작곡에서 종교적 심상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아베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간절한 경외를 담은 놀라운 작품이었던 것이다. 갑작스레 종교적 경건함을 드러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슈베르트는 이처럼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신념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찬송가나 성가를 작곡해본 적도 거의 없습니다. 다만 신념이 무심결에 나에게 밀려오길 바랍니다. 그때 그것은 지극히 진실하고 옳은 신념이 됩니다." 이 음악으로 빚어진 기도는 역사상 가장 친숙한, 그리고 오래 사랑받는 성가 작품이 되었다.

이 곡이 몇 분쯤 진행되었을 때, 주목할 만한 일이 또 벌어졌다. 한 여성과 취학 전인 듯한 남자아이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왔다. 여자는 바삐 걸어가고 있고, 아이도 마찬가지다.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엄청 시간에 쫓기고 있었어요." 그녀는 연방 정부기관에서 IT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셰론 파커였다. "8시 30분에 운동 교습이 있기 때문에 우선 이비를 선생님에게 데려다주고, 회사로 들어갔다가, 또 지하에 있는 연습실로 빨리 가야 했죠."

이비는 그녀의 아들 에반을 말한다. 에반은 3살이다.

비디오에서 똑똑히 에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점퍼를 입은 귀여운 흑인 소년은 조슈아 벨을 보려고 연신 몸을 뒤틀어대지만, 엄마에 이끌려 문 밖으로 내보내진다.

엄마의 말이다. "연주자가 있어서 아이가 관심을 보였어요. 아이는 잠시 서서 노래를 듣고 싶어했지만 내가 시간이 없었죠."

파커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에반과 벨 사이를 가로막아 아들의 시선을 차단한다. 그곳을 빠져나갈 때까지도 아이는 열심히 연주자를 돌아보는 모습이다. 파커에게 그녀가 놓친 연주에 대해 설명해주자, 그녀가 웃는다.

"에반이 똑똑한 거로군요!"

시인 빌리 콜린스는 이런 우스개를 한 적 있다. 모든 아이들은 시적 감각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엄마의 심장 뛰는 소리가 시에서 단장격에 해당되는 리듬을 갖기 때문이다. 콜린스는 삶이 펼쳐지면서 서서히 시가 우리 속에서 사라진다고 했다. 아마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도 거리낌없이 바삐 발길을 재촉한 대다수의 행인들과 그에 대비되는 소수, 멈춰서 벨을 본 사람, 또는 돈을 준 사람 사이에서 인종이나 여타 인구통계학적 차이는 없었다. 백인, 흑인, 아시아인, 젊은이와 늙은이, 남성과 여성이 세 그룹에 모두 골고루 있었다. 오로지 단 한 가지 인구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사실이 관찰되었다. 아이일 경우,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멈춰서 구경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역시 한 차례의 예외도 없이 모든 부모가 아이를 채근하여 떠났다.

***

그날,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을 정도로 정말 바쁜 사람을 꼽자면, 그건 조지 틴들리였을 것이다. 틴들리는 일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그때 이미 일을 하고 있었다.

랑팡 역을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용하는 유리문을 벗어나면 실내에 작은 쇼핑몰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의 문을 통해 거리로 나가거나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타서 바로 근처 사무실 빌딩들로 갈 수도 있다. 쇼핑몰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상점은 오봉뺑이었다. 크로아상과 커피를 파는 곳이다. 40대인 틴들리는 여기서 흰색 유니폼을 입고 테이블을 정렬하고, 소금과 후추통을 채우고,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일을 한다. 틴들리는 꼼꼼한 상사의 감독 아래 일하고 있으며, 상사는 그가 바지런하길 바라므로, 그는 기대에 부응한다.

하지만 매분마다 한번 정도씩, 마치 무엇에라도 이끌린듯, 틴들리는 오봉뺑 가게 구역 가장자리까지 나서서, 한 발은 여전히 가게 안에 두어 반쯤 걸친 채, 몸을 최대한 밖으로 기울여 가능한 한 쇼핑몰 복도까지 내다보며, 유리문 저편의 연주자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기에 문은 거의 열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음악 소리를 꽤 잘 들을 수 있었다.

"그 사람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단박에 알 수 있었죠. 분명히 프로였어요." 틴들리의 말이다. 틴들리는 기타를 연주할 줄 알고, 현악기의 소리를 사랑한다. 그리고 음악가라고 해서 다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음악을 연주하는 거거든요. 음악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글쎄 그 사람은 음악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움직이고 있었어요. 소리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어요."

약 30미터쯤 떨어진 곳, 상가 건너편에는 복권 사는 곳이 있었다. 가끔 대여섯 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그들은 틴들리보다 훨씬 벨을 잘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저 고개를 돌려 보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3분 동안 한 명도, 복권 사는 사람 중에는 없었다. 그들은 그저 번호를 뱉어내는 기계로 묵묵히 다가갈 뿐이었다. 상금밖에 눈에 들어오는 게 없는듯.

J.T. 틸먼은 그 줄에 서 있었다. 주택 및 도시 개발부의 컴퓨터 전문가인 틸먼은 그날 복권에 건 숫자를 하나하나 죄다 기억하고 있다. 하나에 2달러씩 모두 10장을 했으니 총 20달러를 쓴 셈이었다. 그러나 그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거기서 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했다.그는 그냥 일반적인 고전 음악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타이타닉 호가 빙산에 충돌해 침몰하기 전에 그 안에서 밴드가 연주했던 그런 음악 종류 같았다고 말이다.

"전혀 생각나는 바가 없는데요. 그냥 남자 한 명이 돈을 벌려고 하는구나, 정도일까요." 틸먼은 제대로 알았다면 한두푼이라도 던졌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날 가졌던 현금은 모두 로또에 썼다고 헀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가 중 한 명의 연주를 놓친 것이라고 말해주자, 틸먼은 웃었다.
"다시 이 근처에서 연주할 날이 있을까요?"
"그럼요, 하지만 공연을 들으려면 꽤나 돈을 내고 표를 사셔야 하겠죠."
"젠장."
틸먼은 그날 복권에서 돈을 딴 것도 없었다.

***

벨은 "아베 마리아"를 끝내고 또 한번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정적을 맛본 뒤, 이번에는 마누엘 퐁세의 감상적인 곡 "에스트렐리타"를 연주했다. 다음에는 쥘 마스네의 노래를, 다음에는 발랄하고 쾌활하며 서정적인 춤곡인 바흐의 가보트를 연주했다. 그것은 옛날의 정취를 간직한 곡이다. 가발을 쓴 사람들이 베르사이유 무도장에서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도 좋고, 혹은 피이터 브뤼겔 풍 그림에서처럼 발을 차며 춤추는 농부들이 있는 곳에서 류트와 바이올린과 파이프로 연주되는 광경을 상상해도 좋다.

몇 주 뒤에 비디오를 보면서, 벨은 딱 한 가지 점에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자신의 연주가 군중을 모으지 못한 이유는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평일 아침 바쁜 시간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놀랐다. "제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양,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믿을 수가 없었어요. 안 그런가요? 저는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고요!"

정말이었다. 아무리 음악을 모른다 해도, 저기에 한 사내가 서서, 온갖 시끄러운 소리들을 내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벨의 활 긋기는 실로 섬세하여서 때로는 두 개의 악기가 화음을 맞춰 연주하고 있는 착각도 든다. 얼굴을 정면으로만 향한 채 바삐 스쳐간 그 행인들이야말로 정말이지 놀랍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벨은 이 무관심이 고의적인 것인지 아닌지 궁금해했다. 연주자를 드러내고 쳐다보지 않으면 돈을 건네지 않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돈을 뜯기는 일에 말리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어쩌면 옳은 해석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그런 의도였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바빴다고, 딴 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고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휴대폰에 대고 큰 소리로 대화하며 지나갔다. 지긋지긋한 소음을 이겨보려고 말이다.

캘빈 마인트도 그랬다. 마인트는 조달청에서 근무하는데, 에스컬레이터 끝까지 와서는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거리로 향한 문으로 나섰다. 몇 시간 뒤 우리가 그에게 물어보자 그는 시야 안에 연주자가 있었다는 기억 자체가 없다고 답했다.

"제 행동 경로에서 어디쯤에 그가 있었다는 거죠?"
"약 1.2미터 떨어진 곳에요."
"오."
마인트의 청력에는 아무 이상도 없다. 그는 다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는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기술의 폭발적 발전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노출을 넓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는 이미 아는 정보원에서만 뉴스를 접하고, 아이팟으로 말하자면 스스로 플레이리스트를 정해서 이미 다 아는 노래만 듣는다.

캘빈 마인트가 듣고 있던 곡은 영국 록밴드 큐어의 노래인 "저스트 라이크 헤븐"이었다. 사실 몹시 멋진 곡이다. 가사의 의미가 불투명한 곡이라, 웹을 찾아보면 그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열혈 팬들의 노력이 그득하다. 제멋대로 해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대로 요점을 짚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노래는 감정의 소통 불능이라는 슬픈 현상을 다룬 것이다. 한 남자가 이상형의 여인을 만나지만 그녀에 대한 심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것은 버젓이 눈 앞에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고야 마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

"네, 그 바이올리니스트 봤어요. 하지만 이렇다 하게 인상에 남는 점은 없었는데요." 재키 헤시안의 말이다.

그녀의 행동을 보았다면 이런 답을 예상하기 힘들 것이다. 헤시안은 지나치기 전에 벨을 뚫어져라 오래 쳐다본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음악 자체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뭔가 들은 기억은 없네요. 저 남자가 저기서 뭘 하고 있나, 저 일이 할 만한 일인가, 돈이 벌리긴 하나, 케이스에 돈을 좀 넣어놓고 시작하는 게 낫지 않나, 아니면 거꾸로 텅텅 비어 있는 편이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게 할까 등등의 생각을 했어요. 재무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던 거네요."

직업이 어떻게 되시죠, 재키?
"연방 우편국의 노사관계 문제를 담당하는 변호사에요. 얼마 전에 연방 단위 협상 하나를 중재했죠."

***

그곳에는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관람석이 따로 있었다. 창가 쪽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날, 5달러를 내고 구두를 닦았다면, 당신은 신발에 광을 내는 것 이상의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그날 벨이 연주할 때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테렌스 홈즈는 교통부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사람이다. 홈즈는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 자리에 앉은 건 어디까지나 신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저한테 항상 정장을 입을 거면 반드시 구두를 반짝반짝 닦으라고 하셨죠."

홈즈는 정장 입을 일이 잦기 때문에 그 의자에 올라 앉는 때도 잦다. 그래서 신발 닦는 사람과도 친한 편이다. 홈즈는 팁도 후하고 대화도 곧잘 하는 손님이며, 그날도 다를 바가 없었다. 구두를 닦아주는 여자는 그날따라 뭔가 심란한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음악 소리 때문에 더 복잡하다고 했다. 홈즈에 따르면 그녀는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다고 불평했다. 홈즈는 그녀를 달래주었다.

에드나 수자는 브라질 출신이다. 그녀가 랑팡 플라자에서 구두닦이 일을 한 지는 6년째다. 그녀는 길거리 연주자들에 대해 나름의 입장이 있다. 그들이 연주를 하면 그녀는 손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고, 그건 사업에 나쁘다. 그래서 그녀는 곧잘 싸운다.

수자는 지하철 역사와 상점가를 가르는 경계선을 보여준다. 에스컬레이터 쪽은 지하철 역사 관할이고, 상점가는 쇼핑몰 운영 회사의 관할이다. 수자에 따르면 연주자는 지하철 쪽에 서 있을 때도, 쇼핑몰 쪽에 서 있을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녀는 가만 놔두는 법이 없다. 그녀의 핸드폰 단축번호에는 쇼핑몰 담당 경찰의 전화도, 지하철 담당 경찰의 전화번호도 저장되어 있다. 오래 버티는 연주자가 드물다.

그렇다면 조슈아 벨은?

물론 그도 시끄러웠다고 수자는 말한다. 그녀는 이 말을 하면서 구두 닦는 천을 내려다보고, 코를 한번 훌쩍인다. 그녀는 빌어먹을 연주자들에 대해서라면 좋은 말일랑 전혀 할 게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은 실력이 꽤 좋았거든요. 내가 경찰에 전화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수자는 그 남자가 유명한 음악가라는 사실을 듣고 몹시 놀랐으나, 사람들이 본체만체 지나쳤다는 얘기를 듣고는 놀라지 않았다. 그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브라질에서라면 사람들이 죄다 몰려들어서 둘러싸고 들었을 거에요. 하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죠."

수자는 에스컬레이터 꼭대기 참을 향해 고개를 저어보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인가, 노숙자 한 명이 저기서 죽었어요. 그냥 가만히 누워 있다가 죽은 거죠. 경찰이 오고, 구급차가 왔는데도, 지나가는 사람 중 누구도 발걸음을 멈추거나 쳐다보지 않더군요.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서는 그냥 똑바로 앞만 보고 걸어요. 자기 일이나 신경 쓰시지, 하고 정면만 바라보는 거죠. 누구나 스트레스가 가득한 상태니까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아시죠?"

***

인생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근심에만 가득하여,
서서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W.H. 데이비스의 "여유" 중에서

칸트의 말이 옳다고 하자. 1월 12일의 사건을 두고 사람들의 교양이나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능력에 대해 평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하지만 삶을 음미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어떤가?

우리는 다들 바쁘다. 미국인들은 늘 바빴다. 최소한 1831년부터는 그랬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 해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라는 젊은 프랑스 사회학자가 미국을 방문하였는데, 그가 특히 깊은 인상을 받고 놀라고 다소 경멸을 느끼기도 한 점이 바로 미국인들이 다른 모든 것을 제치고 일과 부의 축적에만 매달리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바뀐 점은 별로 없다. 영화 "코야니스카시"를 DVD로 한번 보라. 1982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대사가 없고, 암울한 빛을 발하는 아방가르드 영화로서, 현대 일상의 광적인 속도를 다루고 있다. 미니멀리스트 작곡가 필립 글라스의 음악이 배경에 깔리는 가운데, 감독 고프리 레지오는 일상을 영위하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이어붙이되 속도를 엄청나게 높여 마치 조립라인 기계들이나 세상 끝을 향해 전진하는 로봇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랑팡 플라자의 비디오를 다시 보라. 빠르게 감기로 말이다. 필립 글라스의 사운드트랙은 여기도 꼭 어울린다.

"코야니스카시"란 호피 인디언들의 말이다. 그 뜻은 "균형을 잃은 삶"이라고 한다.

영국 작가 존 레인은 2003년의 책 <영원한 아름다움: 예술과 일상생활>에서 현대인들이 아름다움을 음미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쓴 바 있다. 레인은 랑팡 플라자 실험도 그 현상을 드러내는 징후라고 본다. 사람들은 능력이 없어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들에게 아름다움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잘못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인의 말이다.

삶에서 잠시 짬을 내어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가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노래들을 연주하는 것을 들을 여력도 없다면, 현대의 삶이 너무나 버거워 그런 것들에는 귀가 먼듯 눈이 먼듯 살 수밖에 없다면, 대체 우리는 그밖에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이겠는가?

앞서 인용한 시를 쓴 1911년에 쓴 W.H. 데이비스가 하고자 한 말도 바로 그것이었다. 데이비스는 저 문장으로 유명해졌다. 실로 단순한 생각이다. 원초적이기까지 한, 누구나 아는 말이다. 그러나 데이비스 이전에는 어쩄든 누구도 저 말을 공공연히 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데이비스에게는 남과 다른 이점이 있었다. 인식의 이점이라고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스는 상인도, 노동자도, 귀족도 아니었다. 물론 컨설턴트도, 정책 분석가도, 노동 변호사도, 프로그램 매니저도 아니었다. 데이비스는 부랑자였다.

***

그날의 문화적 영웅이라 할 만한 사람은 랑팡 플라자에 느지막히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작고 머리가 벗어진 존 피카렐로, 유별난 점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인물이었다.

피카렐로는 벨이 마지막 곡으로 "샤콘느"를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렸다. 비디오를 보면 피카렐로가 가던 길을 우뚝 멈춰서서 노랫소리의 진원을 찾은 뒤, 상가 반대편으로 물러나는 모습이 보인다. 피카렐로는 구두닦이 매점 지나, 복권줄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섰다. 그리고 다음 9분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 글에 인터뷰한 다른 행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자는 피카렐로가 건물을 벗어나려 하는 무렵 다가가 말을 걸었다. 기자는 그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통근에 관한 기사를 쓰는 중이라고만 말해주었다. 그날 오후, 기자가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피카렐로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 출근길에 뭔가 특이한 점이라도 없었는지 물어보았다. 그제까지 기자는 4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즉각 바이올리니스트 얘기를 꺼낸 것은 피카렐로가 유일했다.

"랑팡 플라자 에스컬레이터 꼭대기 쯤에서 연주하는 음악가가 있었어요."

전에도 연주자들을 본 적이 있지 않나요?
"하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무슨 뜻인가요?
"엄청나게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거든요. 그런 재능있는 연주는 생전 처음 들어봤어요. 기술적으로 원숙한데다 엄청나게 유려하더군요. 악기도 크고 풍성한 소리가 나는 것이 썩 좋더군요. 좀 물러나서 들었어요. 그의 공간을 방해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정말인가요?
"정말이에요. 기억할 만한 경험이었어요. 정말 행운이었죠. 하루를 그렇게 시작하다니, 너무나 멋지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는걸요."

피카렐로는 고전 음악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사실 조슈아 벨의 팬이었지만 그의 얼굴을 알아보진 못했다. 그는 벨의 최근 사진을 본 적이 없었고, 그날도 어쨌거나 꽤 먼 거리에서 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피카렐로는 거기서 연주하는 사내가 그저 그런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비디오를 보면 간간이 피카렐로의 모습이 잡히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네, 다른 사람들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더군요. 아예 들리지도 않는 듯 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또 몹시 황당하게 느껴졌어요."

뉴욕에서 자란 피카렐로는 진지하게 바이올린을 공부했었다. 전업 음악가가 될 요량이었다. 하지만 18세에 그만 두었는데, 먹고 살 만큼의 실력은 못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게 마련이다. 가끔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해야 할 상황이 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직업을 가졌다. 그는 지금 미국 우편국의 감독관이다. 바이올린은 켜지 않는다.

피카렐로는 말한다. "변변찮지만 5달러를 놓고 왔어요." 소박한 마음이었다. 비디오를 보면 그가 돈을 놓고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피카렐로는 슥 다가와서 벨의 얼굴은 거의 쳐다보지도 앉고, 그저 돈을 던져놓고 나간다. 그리고는 당황하기라도 한듯, 잽싸게 총총 걸어가버린다. 한때 자신이 되고 싶어했던, 그런 바이올리니스트를 두고 떠난다.

피카렐로는 과거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있을까?
우편 감독관은 한참 생각해본다.
"아니요. 무언가를 사랑하지만 직업적으로는 하지 못하겠다고 선택했을 경우에도, 그게 가치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죠. 왜냐면, 그걸 잃어버린 건 아니잖아요. 그 애정은 영원히 간직하고 있는 거죠."

***

벨 자신의 생각으로는 그날의 공연에서 최고의 대목은 두 번째로 "샤콘느"를 연주하던 마지막 몇 분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는 처음으로 한 사람 이상의 관중이 음악을 들어준 때이기도 했다. 피카렐로가 한참 뒤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그 때, 재니스 올루가 도착해서 벨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섰다. 주택 및 도시 개발부의 유산 관리자인 올루 역시 어릴 때 바이올린을 연주했었다. 그녀는 들려오는 곡의 제목은 몰랐지만, 그 곡을 연주하는 남자의 재능이 탁월하다는 것은 알았다.

올루는 커피를 마시러 잠시 나온 참이었고, 가능한 한 최대로 머물렀다. 마침내 돌아서서 가면서, 올루는 옆에 선 낯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정말이지 더 듣고 싶은데 말이죠." 그녀 옆에 섰던 그 낯모르는 사람은 사실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다.

이 실험을 준비하면서, 워싱턴포스트 매거진 편집자들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예상하며 대책을 얘기해보았다. 가장 많이 나온 얘기는 군중이 모일 경우 어떻게 통제해야 하나 하는 점이었다. 워싱턴 시민들은 매우 교양 있는 편이기 때문에, 분명히 벨을 알아보는 사람이 여럿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편집자들은 "만약" 시나리오에 밑도 끝도 없이 빠져들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무슨 일인지 보려고 마구 밀려들면 어쩌지? 사람들 사이에 말이 나돌 것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겠지. 그러면 사람들이 더 몰려들 테고. 러시아워인데 행인들의 길이 막히겠지. 다투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고. 군인이 오면 어쩌지. 최루탄에 고무탄에...

현실에서는 벨을 알아본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그녀는 아주 마지막에야 등장한다. 통상부에 근무하는 인구통계학자 스테이시 후루카와가 보기에는, 정말이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는 고전 음악을 잘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바로 3주 전, 벨이 국회 도서관에서 무료 공연을 했을 때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 세계적 거장이 눈앞에 있었다. 활을 그으며, 행인들의 적선을 바라고 있었다. 그녀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간에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후루카와는 벨에게서 3미터쯤 떨어진 곳에, 정면에 마주보고 섰다. 그녀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띠고 있었다. 후루카와는, 그리고 그녀의 미소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서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워싱턴에서 겪은 일 중 최고로 놀라운 일이었어요. 조슈아 벨이, 러시아워에 저기 서 있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멈추지 않고, 아니 쳐다보지도 않고, 몇몇은 그에게 25센트짜리 동전을 던지고 가다니! 25센트라뇨! 저라면 그 어떤 연주자에게도 감히 그런 동전을 던지진 못하겠어요. 세상에, 난 대체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 거야? 하고 생각했죠."

공연이 끝나자, 후루카와는 벨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고, 20달러를 던져넣었다. 그 돈은 명성의 덕을 입은 액수이니 제외하도록 하자. 벨이 43분을 내리 연주해서 번 돈은 32.17달러였다. 그렇다. 페니를 던져넣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벨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실적은 아니에요. 한 시간에 40달러를 번 거잖아요. 그 정도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잖아요. 따로 에이전트를 둘 필요도 없고 말이에요."

지금도 랑팡 플라자에서는 로또 티켓이 불티난듯 팔려나간다. 가끔 연주자들이 나타나서 에드나 수자의 화를 돋운다. 조슈아 벨의 새 앨범 "바이올린의 소리"는 역시 좋은 평을 받았다. ("섬세하면서도 긴박함." "장인다운 세심함."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탁월함." "음악의 정상에 올랐다."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동시에 흐느끼게 할 것이다.")

벨은 유럽의 수도들을 잇는 투어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주에 다시 미국에 돌아온다. 그럴 일이 있기 때문이다. 화요일에 벨은 애버리 피셔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랑팡 플라자에서 호된 실패를 겪었던 그를, 미국 최고의 클래식 음악가로 인정하여 주는 상이다.

by starla | 2007/04/10 14:31 | la dolce vita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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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oyce at 2007/04/10 15:04
only ghosts are real. what human means social network... :)
Commented by witelier at 2007/04/10 16:55
대단한 실력을 가지면 오히려 장난기가 느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도 그 종류인거 같네요. 그나저나 비디오에서 연주되는곡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군요.
혹시나 퇴근시간에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Commented by 고우 at 2007/04/10 19:43
한국에서 했다면 대단한 반응이 나타났을거에요.. 몇몇 사람들은 동영상을 찍었을테고.. 몇몇사람은 블로그에 올리려고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르고.. 몇몇 사람들은 잘생긴 얼굴을 보고 얼굴이 불그레해졌을테고.. 어떤 사람은 자릿세를 달라고 했을지도... 하지만 한국인이 한국악기로 했었다면... 비슷한 상황이..
Commented by starla at 2007/04/11 01:10
joyce 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저 걷는 사람들은, 뭐, 그저 걷는 사람들이죠...

witelier 님/ 저도, 기사 다 읽고나니 남는 생각이, 아 조슈아 벨 멋진 사람이네, 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하하하.

고우 님/ 맞습니다. -_-; 그놈의 휴대폰 동영상... 근데 한국인이 한국악기로 하는 상황 상상하니 왜 웃음이 나죠... 일단 앉아서 하는 연주를 상상하게 되어서 그런가봐요...
Commented by refugee at 2007/04/11 03:22
너무 길어서 다 읽지는 않았네. 후후. 나에게 죠슈아벨은 한국에서의 무성의한 공연이후 굉장히 싫은 인상만이 남아있다. 리히터의 전설적인 한국공연 에피소드와 비교한다면 벨은 4가지 없는 천재가 아닐지? (너무 막나가는 것인가!) 동영상 역시 손도 안댔;;

그나저나 스타라께서는 벨의 연주를 좋아하시나봐유?
Commented by starla at 2007/04/11 09:35
refugee/ 아니 딱히 좋아하고 말고는 없지만... 이름에 어울리게 감정선을 잘 잡는 우아한 연주자라는 인상 정도? 그리고 잘 생겨서 오히려 다소 손해보는 케이스라는 정도? 하지만 이젠 어엿한 중년이시더구만. 허허허.
Commented by 雨氣 at 2007/04/11 18:07
starla님의 수고에 감사드리고 싶네요~ 정말 잘 읽었어요.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면서요. 흠, 내 눈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하는 상상과 함께 말이에요. ^^
Commented by starla at 2007/04/12 17:37
雨氣 님/ 좋게 들은 사람은 다 자기가 연주 경력이 있다는 것... 역시 그런 건가봐요.
Commented by at 2007/04/12 18:09
뭔가 와서 읽어보랬는데 뭐였더라 하면서 들어왔지
조슈아 벨이라는 이름은 어딘가 초콜릿이라거나 마가렛트 비슷한 과자에 붙일만한 이름 같은 데다 얼굴도 너무 곱다래서 별 애정 없었는데 기사 읽고 애정급상승~ 7월 공연도 예매해버렸삼 흑

어제 얘기 들을 때도 으음하긴 했지만 샤콘느를 연주했는데도 그렇게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더라는 것은 정말 대박이네 (=샤콘느야말로 연주자의 기량이 한큐에 드러나는 곡이라는 편견 있음) 자, 우리 그런 관객들을 대상으로 스탈라 양을 기용, 1분에 70센트씩 벌어보아요~

포스팅 곳곳에서 쓸쓸함이 묻어나는구려. 나도 정말 안될 것 같아. 마음이 흘러가는 곳에 대해서도 설명해줘
Commented by JIYO at 2007/04/17 16:34
아, 이 기사 읽고 싶었는데 영어가 달려서 포기하고 있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전에 영어 공부를;;;)

선뜻 나선 조슈아 벨도 멋지고, 기사도 멋지네요. 상큼하고 유머 있고, 재치 넘치고. ^^
Commented at 2007/04/21 10:5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진틀러 at 2007/07/11 13:26
늦게 봤지만, 정말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긴 영어 문장에 골치 아프지 않아도 되었어요. ^^
Commented by 이언 at 2007/08/05 23:57
늦게 발견한 글인데 너무 좋네요. 링크합니다.
Commented by 대구총각 at 2013/09/28 10:25
우연히 검색중에 들렸습니다. 다른 기사는 전부 요약정리 되어 있어서 참 궁금했는데, 덕분에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다른분들과도 나누고 싶어 인용해가겠습니다:)
Commented by 러블리민트 at 2015/11/20 02:00
와..... 글 내내 소름돋으며 읽었어요. 진심 너무 좋았습니다. 조슈아벨 실험에 관련된 글을 읽고싶어서 영어를 해석해야했는데.. 진짜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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